군사 반란 집단 무장 반란군 북한과 졸렬한 일본 무관심한 대한민국 정부가 만들어낸 역사가 기록하지 못한 비극 63년의 그리움 내딸 미요코군사 반란 집단 무장 반란군 북한과 졸렬한 일본 무관심한 대한민국 정부가 만들어낸 역사가 기록하지 못한 비극 63년의 그리움 내딸 미요코

Posted at 2015.02.14 21:15 | Posted in 일본 정보글

 

1950년 9월 한반도가 중공과 소련의 비호 아래 군사 반란 집단 무장 반란군 북조선(北朝鮮) 김씨 왕국

북한(北韓) 의 초대 국왕 북한의 초대 독재자 김일성이가 불법으로 일으킨 6. 25 전쟁의 수렁텅이에

한참 빠져 있었던 이 시기 일본에서 642명의 재일동포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한국 전쟁에 참전 하게 된다.

 

참고로 이들중 135명이 전사하고 265명이 일본으로 돌아갔고 242명은 일본의 가족 품으로 돌아갈수가

없었다고 한다.

 

군사 반란 집단 무장 반란군 북한과 졸렬한 일본 무관심한 대한민국 정부가 만들어낸 역사가 기록하지 못한

비극 63년의 그리움 내딸 미요코 이 이야기의 주인공 일본 니가타 현(新潟県) 에서 출전한 88세 김운태 할아버지

 

내가 한국으로 나올때 쯤에 3살된 딸이 있었는데 이름이 가네야마 미요코였다면서

이사진이 내 딸 모습이라고 사진을 보여주고 있는 김운태 할아버지

참고로 김운태 할아버지가 한국으로 나올때 그의 부인은 또 다른 아이를 임신한 상태

였었다고 한다.

 

경상남도 합천 현재 김운태 할아버지가 인생의 노년을 보내고 있는 곳이다.

 

일본에 몇살때 들어갔습니까?

 

소학교를 16살때 졸업하고 일본에 학교를 갈거라고 들어갔는데 그때 바로 해방이 되서 학교를 못 다녔어

학교도 못다니고 나오지도 못하고 일본에 주저 앉아 있었지

 

거기서 그럼 여자를 알아서 애 낳고 생활을 했습니까?

 

그 여자가 일본 여자 였는데 나보다 두살 아래였어 친해져서 쭉 같이 생활을 했거든 살다 보니까 6. 25 사변이

났단 말이야 한국에서.. 그때 아기가 세살 이었는데 세살된 아기를 놔두고 한국 전쟁에 참전 했거든

 

형님은 그럼 그 당시에 전쟁이 끝나고 나서 일본으로 갈수도 있었는데

왜 안가고 여기에 남았습니까? 일본에 못가게 되어 있었습니까?

 

일본에 못 들어가게 되어 있었어 우리가 전쟁 끝나고 나서 일본으로 돌아 갈거라고

전부다 각지에서 모였는데 모이긴 어디서 모였냐 하면 전부 다 부산에서 모인거야

이제 휴전이 됐으니까 우리는 할일을 다했다고 일본에 처 자식이 있으니까 생각이 나고

보고 싶고 그래서 대기 하고 있었던 거지

 

한 두어달 있으면 들어갈거다 좀 있으면 또 곧 들어 갈거다 이래가지고 3년 넘게

기다린거지 결국은 말이지 일본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한국에서 이리저리 모두

흩어져서 이렇게 살고 있는거 아닙니까...

 

위정자들이 부패하고 나라가 무능하고 힘이 없으면 힘없는 나라의 국민들이 어떤 꼴을 겪게 되는것인지 

있는 그대로 생생하게 적나라하게 필자와 여러분에게 보여주고 있는 평생 한과 기구함이 끊이지 않았던

김운태 할아버지의 삶 필자는 이 김운태 할아버지를 20세기 우리 민족이 겪었던 너무도 뼈아픈 흑역사

아픈 역사를 맨몸으로 증언해주는 살아있는 산 증인이라고 일컫고 싶다. 

 

일본 125대 일왕 아키히토(あきひと | 明仁 | Akihito) 덴노 내외가 참여해서 화제가 됐었던

2013년 4월 28일 일본에서 있었던 일본 주권 회복의 날 61주년 기념식

참고로 1952년 4월 28일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의 발효로 주권을 회복하게 된뒤

일본은 곧바로 한국 전쟁에 참전한 재일동포 청년들의 재입국을 거부하였다.

 

경상남도 합천 다시 이 이야기의 주인공 김운태 할아버지 집으로

가보자

 

재일 학도 의용군으로 한국 전쟁에 참여 했었던 김운태 할아버지

 

못간다 할적에는 다 화가 나지 이때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못간다고 하니까

저리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다 화가 나지 미요코 한테도 그렇고 못들어간다고 하니까

내가 고의로 안들어가는게 아니고 이런 사정으로 못들어가니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

아이가 귀여웠거든 어린게 못생기고 잘생기고를 떠나서 귀엽게 생겼단 말이야

기억 나는 것은 아빠 하고 방긋이 웃고 안길때는 기억이 나지

 

여기로 나와서 못돌아가니까 말이지 편지를 너댓번 했어 그래도 불통이라 안돼

우체국에서는 편지를 받아줬는데 일본에는 안들어갔던 거라

그당시에는 일본도 우리 한국의 편지를 안받고 사람도 안받고 편지를 해도 연락이

없는 거라 편지가 돌아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고 일본에서는 내 주소를 모르기 때문에

편지를 못하는 거고 그러면서 세월이 가서 연락이 끊어졌지

 

참고 살아야지 어쩌겠어......

 

보면 볼수록 너무 안타까운 눈물이 앞을 저절로 가리게 하는 ㅠㅠ 김운태 할아버지의

지난날의 기고 했던 삶 ㅠㅠㅠ

 

일본에 갈수 없다는것을 알고 김운태 할아버지는 한국에서 새 장가를 들고

슬하에 다섯 형제를 두었다고 한다.

 

지난 4월 63년 만에야 겨우 김운태 할아버지는 민단의 초청을 받아 동지들과 함께 일본 땅을 다시

밟게 되었다.

 

김운태 할아버지와 재일 학도 의용군 동지들을 환영 하는

재일본 대한민국 민단 단장 오공태 단장

 

딸이 세살되었을때 나왔으니까 그아이도 한 육십 칠팔세가 안됩니까?

그 아이도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고

그때 또(임신한 아내) 아들을 낳았는지 딸을 낳았는지 모르죠

그러고 나서는 연락이 없으니까 마음이 별로 안좋지 뭐

 

63년만의 귀가에 지난날의 자신의 삶에 대한 한과 서러움 울분 및 부인과 자식들에

대한 미안함 죄책감이 동시에 폭발했는지 눈물을 흘리고 있는 김운태 할아버지 ㅠㅠ

아아 할아버지 울지 마세요 ㅠㅠ

 

63년만의 귀가

 

니가타 현(新潟県) 시바타 시청

 

63년만에 이곳을 들른 김운태 할아버지가 63년째 머리속에서 잊지 않고 있는

일본에서 자신이 살았던 집 주소와 부인의 이름 딸의 이름을 적고 있다.

 

김운태 할아버지의 기대와는 달리 세월이 너무 많이 흘러서

김운태 할아버지의 본 부인 일본 부인과 딸에 대한 기록은

현재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상황

 

사정은 혹시나 해서 찾아간 민단 니가타 본부 또한 마찬가지 였다.

 

그나마 여기서 찾은 한가지 단서 김운태 할아버지의 딸 가네야마 미요코는

소화 24년 1944년 생이다.

 

그 길로 다시 찾은 니가타현 시바타 시청

 

딸 미요코의 생년월일을 알고 있으니까 딸의 출생 신고서를 확인해 달라는 김운태 할아버지의

부탁에 알겠다던 니가타현 시바타 시청 측은 잠시후 김운태 할아버지의 혼인 관계를 증명할수가 없으니까

확인해줄수가 없다고 한다. 원칙에 정말 철두 철미 할 정도로 충실하네 닛폰 ㅎㄷㄷ

 

제 나이가 이제 88세 입니다

아내도 보고 싶지만 무엇보다 아이를 만나고

싶습니다.

 

김운태 할아버지의 너무 소박하면서도 너무 한이 많이 낀

평생에 걸친 소원ㅠㅠ

 

하지만 김운태 할아버지에 대한 기록이 어느곳에서도 나오지 않는다며

니가타현 시바타 시청 측은 끝내 김운태 할아버지의 자료 열람 요청을 거부 했고

김운태 할아버지는 뭐 다 내 탓이지 누굴 원망하겠냐면서 깊은 절망에 그렇

게 혼자 또 빠져들게 되는데...

 

희망의 끈은 다행히도 아직 완전히 끊어진것이 아니었다.

아사히 신문 서울지국의 나카노 아키라 기자가 김운태 할아버지의

이러한 안타까운 사연을 알게 된것이다.

 

서울에서 경상남도 합천까지 직접 내려가서 김운태 할아버지를 만나뵙는

아사히 신문(朝日新聞(あさひしんぶん)) 나카노 아키라 기자

 

알고보니 김운태 할아버지는 타국 일본에서 나라만을 생각하고

나라만을 걱정하느라 오직 자신의 조국만을 위해서 부인 자식들을 다

내팽겨 치고 한번도 아닌 2번씩이나 한국 전쟁에 재일 의용군으로 참전한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남자 였었다. 아아 ㅠㅠ

 

김운태 할아버지의 한 많은 지난날의 아픈 사연을 들으며

자신도 최대한 도움을 드리겠다고 약속을 하고 있는

아사히 신문(朝日新聞(あさひしんぶん)) 나카노 아키라 기자

그후....

 

2013년 6월 16일 일본

 

 

 

아사히 신문(朝日新聞(あさひしんぶん)) 나카노 아키라 기자에 의해

김운태 할아버지의 안타까운 사연이 전 일본으로 퍼져 나가게 된다.

 

신문 보도 한달후

 

김운태 할아버지가 살고 있는 경상남도 합천

 

자신이 미요코라는 분이 나타났다고 자세한 내용을 이야기 하고 싶으니까

서울로 와달라고 김운태 할아버지에게 말하고 있는 아사히 신문 나카노 아키라 기자

오오 설마??

 

아사히 신문 도쿄(Tokyo 東京) 본사로 김운태 할아버지의 딸 미요코씨가 용기를 내서

어려운 발걸음을 해준 덕분에 드디어 밝혀진 63년의 세월 아래 묻혀 있었던 사실들

 

김운태 할아버지의 일본 본 부인 스즈키 기미코씨는 딸을 혼자서 키우며 평생을 힘들게 살다가

병을 앓아서 마지막에는 큰 수술을 받기도 했었음 그러다가 1998년 향년 69세를 일기로 사망

 

김운태 할아버지의 딸 미요코씨는 엄마로부터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단 한번도 듣지 못하고

이때까지 자랐었음 아버지에 대해 물어보면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셧어 이말만 맨날 반복해서 엄마가

자신에게 들려줬었다고 함 아버지에 대해 일절 말해준게 전혀 없었다고 함 그러다가 신문을 통해

아버지가 자신을 찾는다는것을 알고 지금 몹시 충격을 받은 상태

 

김운태 할아버지가 조국을 지키기 위해 2차 출정할때 부인 스즈키 기미코씨 배에 있었던

둘째는 아들이었고 유감스럽게도 돌이 되기 전에 죽었다고 함

 

김운태 할아버지의 일본 본 부인 스즈키 기미코씨는 김운태 할아버지와 헤어진후

돌아가실때까지 재혼하지 않고 혼자서 딸 미요코씨랑 평생을 같이 지냈었다고 함

 

 

 

김운태 할아버지- 가네야마 미요코 부녀의 세상에서 가장 슬픈 63년만의 통화ㅠㅠ

 

그냥 나라가 어떻게 되든지 말든지 일본에서 가족들이랑 있을걸

내가 너무 내 인생 신경 안쓰고 나라만을 신경 썻다고 통한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ㅠㅠ 김운태 할아버지 ㅠㅠ 할아버지 울지 마세요

그리고 죄송합니다 ㅠㅠ

 

 

 

 

군사 반란 집단 무장 반란군 북한과 졸렬한 일본 무관심한 대한민국 정부가 만들어낸 역사가 기록하지 못한

비극 63년의 그리움 내딸 미요코 이야기의 주인공 재일 학도 의용군 용사 김운태 할아버지의 이야기..

 

할아버지가 뭐 막 거창하게 엄청난걸 요구한것도 아니고 이것저것 무리하게 과하게 이때까지 바라고 있었던것도

아니고 필자와  여러분들을 비롯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일일 뿐인 가족들과 함께 하기 고작 이것만을

항상 평생동안 바라고 있었을 뿐이었는데 김운태 할아버지에게는 고작 이게 평생의 소원이었을 뿐이었는데 왜 이때까지

그 누구도 어떻게보면 참 별거 아닌 김운태 할아버지의 이 작은 소원 하나에 귀를 제대로 기울여 주지 않았었던 것일까?

나라가 위급할때 끝내 외면 하지 못하고 가족들 다 내팽겨 치고 나라를 위해서 싸우려고 달려온것 뿐인데 김운태 할아

버지가 도대체 얼마나 큰 죄를 지었길래 세상은 김운태 할아버지에게 이런 감당못할 너무도 큰 평생의 죄책감과 고통

희생 시련을 강요했었던 것일까?

 

나라를 한번 잃어봤기에 또 한번 나라를 잃는다는게 어떤 것인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에 풍전등화의 조국의

사정을 안전한 일본에서 끝내 외면 못하고 자기 자신과 가족의 안위보다는 조국의 안위를 가장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조국을 위해 모든것을 다 받쳤었던 김운태 할아버지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그리고 김운태 할아버지와 함께 조국을

위해 일본에서 달려온 642명의 재일 학도 의용군 용사 분들도 모두 존경합니다 세상 사람들 다 잊어도 저는 끝까지

할아버지들을 잊지 않겠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세상이 이 행복이 이 평온함이 이분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루어져 있다는것을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 모두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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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3
    안타까운 이야기네요
    조국을 위해 목숨바쳐 싸웠지만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가족과의 이별이라니
    북괴 ㅅㅂ새끼들 졸렬한 일본 ㅠㅠ
    • 2015.02.16 18:26 신고 [Edit/Del]
      네 북한과 졸렬한 일본 무관심한 대한민국 정부가 만들어낸 비극중의 비극이죠 ㅠㅠ 아휴.. 참 진짜 이 할아버지가 도대체 뭔 죄가 있길래 평생에 걸쳐서 이런 고통을 감내 해야 했던것인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여러가지 감정이 참 교차하는거 같습니다
  2. Hasegawa
    이 글을 읽었는데 뭔가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날 정도로 글썽거렸네요... 북한도 북한문제였지만 아무래도 제가 태어났던곳 그리고 제 어머니의 국적인 일본때문에 전쟁이 일어났다고 생각이나네요 이런 말은 나쁘지만 물론, 한국이든 북한이든 자기 밥그릇을 지키기위해 이런일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프로그램 방송을 아까전에 찾아서 봤어요 뭔가 슬프네요
    • 2015.02.16 18:08 신고 [Edit/Del]
      아 그렇군요.. kbs 가서 직접 보고 오신 모양입니다.. 진짜 주소만 알면 감사하다고 직접 찾아가서 인사라도 드리고 싶은 할아버지 인거 같네요 이 뒷이야기가 정말 궁금해지는데 알수가 없으니 은근히 참 답답한거같습니다
  3. 上原亞衣
    와 가족 분들을 주저한 채 두번씩이나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 온 할아버지시군요
    진정한 애국자입니다..... 모든 임무를 마치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려는데 저지한 일본은 또 뭔가요
    나라 좀 살아났다고 바로 한국인 입국 거절시켰네요.
    수틀리면 한없이 굽신대다가 조금이라도 우위가 보이면 바로 콧대세우는게 일본 국민성인가봐요

    오직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것만을 생각하며 피를 흘리며 싸우고 일본으로 돌아가려는데 입국이 저지당했을때의 그 좌절 그리고 평생 가족을 보지 못한 그 통탄함.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완전 생이별이잖아요. 외국에 살음에도 조국을 내치지 않고 헌신하다 다시 살던곳으로 가려는 분을....

    모든 업무를 FM대로 하는 일본 시스템 탓에 가족관계 입증이 안되어 친자 정보조회가 안되는 상황에서
    일본 언론인의 도움으로.... 그래도 세상에는 착한 사람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6.25와 일제강점기는 대한민국의 역사에 있어서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큰 비극이에요.
    영원히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번 6.25 날에는 희생되신 분들께 묵념이라도 해야겠습니다.
    • 2015.02.16 18:05 신고 [Edit/Del]
      ㅋㅋㅋ 그러게요 날카롭게 잘 보신거 같습니다 일본놈들이 보면 섬나라 특유의 좀 얍삽하고 졸렬한 간사한 얄미운 기질 야만스러운 기질이 좀 많이 있어요 상대가 힘이 있을때는 벌벌 기고 그렇게 어찌할줄을 모르면서 힘이 없어지면 만만해 보이면 바로 표정 바꿔서 그냥 깔아 뭉갤려고 하고 우습게 보는거 ㅋㅋ 뭐 지들끼리 오랜 전란 생활을 했으니까 생존하고자 이런게 자연스럽게 형성됐을수도 있긴 하지만 솔직히 다른 사람들이 봤을땐 별로인점이 많지요

      암튼 맞습니다 김운태 할아버지 저도 보고 또봐도 진짜 어떻게 2번이나 토끼같은 자식들 사랑스러운 마누라 내팽겨 치고 사지로 뛰어들 생각을 했는지 보면볼수록 존경이란 말이 저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입에서 나오게 되네요 오늘날 솔직히 말해서 이 김운태 할아버지와 김운태 할아버지 동료들 처럼 애국심을 발휘할 사람이 몇이나 있겠습니까

      매번 저는 꾸준히 묵념하는데 올해는 진짜 더 열심히 해야겠네요 그나저나 이후로 딸은 잘 만나본건지 정말 궁금한데 이 뒷이야기를 아는 사람이 한명도 없는거 같아서 참 답답할 노름입니다. 찾아가 보고 싶어도 어디 사시는지 알수도 없고 참.. 허허허
  4. 나라를 위해 충성과 헌신하신 분들이 대접은 커녕 이나라에 친일파,좌파들이 득세하며 나라에 전혀 기여조차 하지 않는 여성부 꼴페미들이 나라에 기생하고. 있으니 이나라 대한민국을 생각하면 암담하기 그지 없는데 나중 이나라에 혼란이나 위기가 닥쳐울때 자기를 희생하며 나라를 위해 헌신할 청년,국민들 얼마나 될까요?
    • 2015.02.16 17:51 신고 [Edit/Del]
      안타깝지만 이분들 마냥 애국심을 기대하기는 어려울거 같습니다 한국인으로 태어난걸 후회한다 던가 전쟁나면 도망갈거라는 응답 비율 이런걸 토대로 추론해보면 현실이 참 암울하죠 이 할아버지 같은 분들이야 나라를 한번 일본애들한테 잃어봤기에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우국충정을 가질수있었지만 솔직히 나라도 뭐 해준것도 없고 거기다 요새 애들은 정신력 자체도 나약하고 나태하고 비교할바가 아니죠 안타깝지만 이게 현실인거 같습니다
  5. 지오
    아~ 안타깝네요~ ㅡ,ㅡ
  6. .....
    무능한 정부 무능한 나라 무능한 관료들 때문에 고생한 조상들이 안타깝습니다.......
  7. 오늘새벽 잠이깨 돌린채널 이 슬픈 이야기를 들으며 아빠도 딸도 안됐다라는 생각이자꾸만 특히 아빠가 한국인이라는 사실로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딸미요코....해피엔딩?을 보는내내 기다렸는데
    • 2015.06.15 18:13 신고 [Edit/Del]
      안타깝지만 이 사연은 시작부터 벌써 비극적인 결말을 암시하는 부분이 곳곳에서 보이는 사연이지요 참 하여튼 안타까운 사연입니다 김운태 할아버지 현재 최신 근황이 정말 미치도록 궁금하네요
  8. (일본에서) 안나왔으면 이런 꼬라지를 안볼낀데
    다 내잘못이다는 장탄식이 내맘을 아프게하네요.
    소수라서 국가에 충성을하고도 대우를 못받으신분........
    이런분들을 높이 평가해야되는데 소수라 목솔이 적습니다.
    패거리가 모여 떠들면 다되는 이나라 사회가 싫어지는 내 조국이네요
    • 2015.06.15 18:15 신고 [Edit/Del]
      그러게요 보고 또봐도 자꾸 봐도 이 사연은 진짜 너무 가슴이 아픈 사연인거 같습니다 그나저나 님이 아시려나 모르겠는데 참 소름 돋는게 뭔지 아십니까? 지금으로 부터 약 500년전인 조선 선조시기 때도 아무 대가없이 오직 내 나라 내 조국을 위해 자신들의 가산까지 탕진해 가며 싸웠었던 수많은 의병들 또한 님이 지금 까지 보신 김운태 할아버지 처럼 결말이 안좋았고 토사구팽 당했었다는 겁니다

      그런즉 이게 뭘 말하는거 겠습니까? 이 500년간 정묘 호란 병자 호란 강제 한일 합방 육이오등등 이 나라는 수많은 말못할 시련을 겪었지만 아직도 정신을 제대로 못차렸다는 거지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 밖에 답이 없지 않습니까?

      님과 저의 나라 이 나라가 훗날 언젠가는 강대국이 되려면 김운태 할아버지 같은 저런 분들 저렇게 그냥 나몰라라 하는거 부터 사라져야 할겁니다 헌데 500년이 되도 정신 못차렸는데 이런 날이 앞으로 올까요? 전 앞으로도 영원히 힘들다고 보네요

      솔직히 말해서 이 나라 자신의 조국을 향해 개 쌍욕을 퍼부어도 할말이 없어지는게 대한민국 입장인데 저 상황에서도 다 내탓이라고 밖에 안하는 김운태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니 할아버지가 자신의 조국을 얼마나 평소에 사랑했는지 그 마음이 가슴 한켠에 와닿는거 같습니다 슬프네요 휴...
  9. 아 대한민국
    대한민국을 위해 나서다 곤경에 처하신 분인데, 대한민국 정부가 나서서 어떤 조치를 했어야 합니다. 아니면 시민단체가 이 일을 위해서 조직되어서 나섰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2016.05.01 12:15 신고 [Edit/Del]
      자기 안위보다 나라를 위해 애쓰고자 한 죄밖에 없는데 막 엄청난걸 저 할아버지가 바란것이 아닌데 너무도 평범한 딸 만나고 싶다 이거 뿐이였는데 그럼에도 저 할아버지가 저토록 고통을 겪으신걸로 보아 이 사실은 아직도 이 나라가 갈길이 멀었다는걸 입증하는게 아니겠습니까

      깨시민인척 코스프레 하면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느니 뭐니 하면서 앞다퉈서 이거 읊고 다니는 남 평판 신경 졸라게 쓰는 허세 관종들은 말만 그렇게 하지 말고 정말 좀 행동으로도 실천좀 했으면 좋겠습니까 당장 50년전 나라를 위해 애쓰신 역사의 산 증인 저런 분들도 까마득하게 잊고 살면서 말이에요 암튼 제대로된 나라라면 나라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분들을 저따구로 대접하는일은 상상도 못할 일이지요
  10. 김똘추
    전쟁나면 절대로 조국을위해 싸우지 않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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